정양진의 역사 르포

鳳崗 丁海龍 제7회 - 정치활동 - 1

竹泉 2012. 11. 12. 19:37

 - 鳳崗 丁海龍의 정치활동 - 1

鳳崗 丁海龍의 정치활동은 1945년 몽양 여운형의 근로인민당 재정부장을 시작으로 정치에 입문하게 되지만 1947년 여운형의 사망으로 근로인민당의 정강정책을 따르는 정치인이 줄어들게 되자 거북정(龜亭)으로 내려와 정치활동을 잠시 중단하게 된다.

 

鳳崗의 정치세계를 살펴보려면 우선 한국 정치사에서 진보정치의 거두로 볼 수 있는 조봉암의 진보당사건, 민족일보 조용수의 재심판결, 사회대중당 김달호의 재심판결, 구익균의 통일사회당 사건의 재심판결 등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왜냐면 봉강의 정치노선을 진보정치, 혁신계 정치인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승만 정부는 진보당의 정강정책과 평화통일론을 이적성으로 보고 조봉암 등 당 간부들을 국가변란 혐의로 체포하고 진보당의 정당등록을 취소하게 된다. 조봉암은 국가보안법위반과 간첩죄로 1959.7.31 사형이 집행되었다. 이재승 교수(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는 전후 냉전사법의 재해석에서 <대법원은 1959227일 조봉암의 간첩 및 국가변란 혐의, 양이섭의 간첩 혐의에 대해 모두 유죄로 인정하여 사형을 확정하였다. 다만 진보당 간부들에게는 국가변란의 인식이 없었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하였다.>고 적고 있다. 사형이 집행된 후 반세기가 지난 오늘날 조봉암의 장녀 조호종씨가 낸 재심청구에서 재판부는 2011.1.20 국가보안법위반 혐의 등에 무죄를 선고하게 된다.

 

1961년 혁신계 진보성향의 조용수는 민족일보를 창간하여 남북협상, 중립화통일, 민족자주통일 등 진보적 정치이념을 폈으나 합수부에 연행되어 국민을 선동하여 북한을 고무 동조하였다는 혐의로 조사를 받게 되고 민족일보는 폐간에 이르게 된다. 마침내 1961년 혁명재판소 심판부는 특수범죄처벌법을 적용하여 사형이 선고되고 같은 해 1221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사형이 집행된다. 그러나 2008118일 서울중앙지방법원의 재심판결은 그에게 무죄를 선고하게 되는데 이재승 교수는 조용수의 재심 무죄판결에 대하여 평화통일론, 남북교류지지, 2대악법반대 가 합법적으로 처벌할 이유가 없고 혁신계에 대한 정치재판이 법관들의 과잉 이념에서 빚어진 판결이었다고 분석하고 있다.

 

김달호는 경북 상주출신으로 1960년대 혁신계를 규합하여 사회대중당 창당에 관여하게 되고 5대 총선에서 당선된다. 김달호 계의 사회대중당 주요간부들은 ‘2대 악법 반대투쟁과 영세중립화 주장 등을 전개하였으나 혁명재판소에서 특수범죄처벌법 제6조 위반으로 처벌을 받게 되고 사회대중당도 포고령위반으로 해체되었다. 2011.9.9 서울중앙지법 형사 27(부장판사 김형두)는 중앙사회대중당 사건의 재심에서 김달호 전 의원에게 무죄를 선고하였다.

 

사회대중당은 1960.5.13. 창당대회를 열고 4.19혁명을 통하여 국민의 주권을 확립시키고 국민의 자유와 인권이 보장되는 사회를 건설하여 민주적 복지사회건설을 정강정책으로 한 정치이념에 鳳崗 뜻을 같이 하고 보성에서 출마하지만 낙선하게 된다. 결국 사회대중당은1961.5.22 포고령 제6조에 의하여 해산된다.

 

1961년 통일사회당이 발족되자 先生은 전남도당 부위원장으로 활동한다. 통일사회당 창당이념은 <민주적사회주의와 평화통일론>이다. 영세중립화통일론과 2대악법반대투쟁에 연루되어 특수범죄처벌법 위반으로 1962년 광주고등법원에서 유죄판결을 받았다. 이에 관하여 이재승 교수(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법철학)<정해룡 선생은 영세중립화통일론 2대 악법반대투쟁과 관련하여 특수범죄처벌법 제6조 위반으로 1962년 광주고등법원에서 유죄판결을 받았다. 혁신계에 대한 최근의 무죄판결에 비추어 정해룡 선생의 정치활동도 온전하게 복원하고 재조명할 필요가 있다.> 견해를 내놨다.

 

이와 같이 혁신계 정치인들을 북한을 이롭게 했다는 이유를 내세워 유죄판결 한 사건들은 이 시대의 법학자와 판사들이 죄가 되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고 사회 통념 또한 그렇게 발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비록 남과 북은 정치적인 이념으로 교류협력관계가 빈번하게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하더라도 개성공단은 남과 북의 고리를 잇고 있어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출처 : 호남 지역사와 문화연구

- 이재승 교수(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 전후 냉전사법의 재해석

- 울산광역시

- 보성인물사 보성군 발행

                                       

 

                               사진설명 : 율포(栗浦)에서 주조장 운영시 촬영한 것으로 추정된 봉강 부부
                               사진제공 : 정길상